[기고] 정치는 애향심이다,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이 시의원이 된 이유
꺼져가는 도시에 생명을 불넣는 정치가가 되자
안희진 기자 / 2026년 06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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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4359년

선거가 끝났다.

누군가는 당선되었고 누군가는 낙선했다. 승자의 환호도 있었고 패자의 아쉬움도 있었다. 
그러나 선거가 끝난 뒤에도 생각하게 되는 것이 있다. 정치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하는 물음이다. 더 높은 권력을 얻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살아가는 지역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최근 한 정치인의 당선 인사말을 읽으며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다. 국회의원을 지낸 사람이 무소속으로 목포시의원 선거에 출마해 시민의 선택을 받은 뒤 남긴 글이었다.

“저도 제가 왜 이런 남들 보기에는 무모하기 이를 데 없는 일에 인생을 걸고 나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편안하게 노후를 보내도 될 텐데 왜 또 힘든 일을 시작하려고 하는지 가족마저 걱정 어린 말을 합니다만…. 저는 소신대로 행동할 때 오히려 마음이 편합니다.”
ⓒ hy인산인터넷신문

그의 한마디는 더욱 인상적이었다.

“침몰해 가는 목포를 구하려고 길을 나섰습니다.”

짧은 말이었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정치적 구호라기보다 활력을 잃어가는 도시를 바라보는 안타까움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 주인공은 전 국회의원 손혜원이었다.

필자는 그의 당선 소감 글을 읽으며 한국섬진흥원 연구부원장으로 근무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당시 목포에 머물며 원도심 골목길을 자주 걸었다. 도시계획과 도시행정 업무를 오랫동안 해온 사람의 눈에 목포 원도심은 근대 개항도시의 역사와 문화, 항구도시의 정체성이 축적된 공간이었다. 오래된 건축물과 골목길, 사람들의 삶의 흔적이 도시의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그런 점에서 “목포 원도심의 근대문화적 가치만 제대로 살려도 목포 전체가 살아날 수 있다”는 그의 말은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도시의 미래를 향한 문제의식으로 다가왔다.

더욱 눈길을 끈 것은 무소속 당선이라는 사실이었다. 오늘날 지방선거에서 정당의 간판은 여전히 중요한 영향력을 가진다. 후보 개인의 역량보다 정당 지지세가 선거 결과를 좌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 현실 속에서 무소속 후보가 시민의 선택을 받았다는 것은 단순한 당선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정당보다 사람을, 정치적 진영보다 지역의 미래를, 구호보다 진정성을 선택한 결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당선은 한 정치인의 승리라기보다 목포 원도심을 살려야 한다는 시민들의 공감이 만들어 낸 선택에 가깝다.

그는 당선 인사말에서 정당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상대를 비난하지도 않았다. 중앙정치를 논하지도 않았다. 대신 원도심을 이야기했고 근대문화유산을 이야기했으며 목포의 미래를 이야기했다.

“목포 원도심의 근대문화적 가치만 제대로 살려도 목포 전체가 살아날 수 있습니다. 제가 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 문장에서 중요한 것은 정치가 아니라 도시다.

오늘날 많은 지방도시는 인구 감소와 청년 유출, 상권 침체와 원도심 쇠퇴라는 공통된 과제를 안고 있다. 지방소멸이라는 말이 현실이 된 시대다. 그러나 도시는 건물만으로 살아나지 않는다.

도시의 경쟁력은 높이 솟은 건물이나 넓은 도로에서 나오지 않는다. 오랜 시간 축적된 역사와 문화, 사람들의 기억과 장소성에서 나온다. 원도심은 낡은 공간이 아니라 도시가 걸어온 시간의 기록이며 지역의 정체성이 남아 있는 공간이다.

군산의 근대역사문화지구와 전주의 한옥마을이 보여주듯 도시의 미래는 과거를 허무는 데 있지 않다.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고 활용할 때 비로소 도시만의 경쟁력이 만들어진다. 목포 역시 충분한 가능성을 가진 도시다. 근대 개항도시의 역사와 문화, 항구도시의 정체성, 원도심에 남아 있는 수많은 문화자산은 다른 도시가 쉽게 가질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다.

시의원은 주민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하는 정치인이다. 골목길 하나, 시장 상권 하나, 빈집 한 채, 공원 하나까지 시민의 삶과 직접 연결된다. 국회의원이 국가의 방향과 제도를 논한다면 시의원은 주민의 일상과 도시의 변화를 다룬다. 그래서 지방자치는 민주주의의 출발점이자 생활정치의 현장이라 불린다.

그러나 현실의 지방정치는 중앙정치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방선거마저 정당 대결의 연장선으로 치러지는 경우가 많고 지역 현안보다 중앙정치 이슈가 선거를 지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정작 시민의 삶과 직결되는 도시 문제와 생활 문제는 관심의 뒤편으로 밀려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전 국회의원이 무소속으로 시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것은 여러 의미를 남긴다. 정치적 위상을 낮춘 것이 아니라 정치의 출발점으로 돌아간 것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권력의 크기보다 지역에 대한 책임을 선택한 것이다.

지방도시의 미래는 중앙정부가 대신 만들어 주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 도시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만들어 간다. 골목길의 변화를 알고, 시장 상인의 어려움을 이해하며, 도시의 역사와 정체성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지역의 미래를 결정한다.

도시를 살리는 힘은 애향심에서 나온다.

애향심은 단순히 고향을 좋아하는 감정이 아니다. 지역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책임감이다. 도시가 힘을 잃어가는 모습을 외면하지 못하는 마음이며 자신이 살아가는 지역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경험과 역량을 기꺼이 내놓겠다는 의지다.

선거는 끝났지만 도시의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 인구 감소도 계속되고 청년 유출도 계속된다. 원도심의 쇠퇴 역시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누가 당선되었느냐가 아니라 누가 지역의 문제를 자신의 일처럼 고민하느냐다.

오늘날 국민이 정치에 희망을 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신의 도시를 사랑하고 지역을 위해 헌신하려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정치는 사람의 일이다. 그리고 지역정치는 애향심에서 시작된다.

전 국회의원 손혜원의 무소속 시의원 당선은 한 사람의 정치적 선택을 넘어 지역정치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정치는 권력을 향해 올라가는 과정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가는 도시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책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정치가 회복해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도 어쩌면 애향심인지 모른다. 자신이 살아가는 지역을 사랑하고 그 미래를 자신의 일처럼 걱정하는 마음이다.

정치는 권력으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다. 끝내 자신이 사랑한 지역과 시민들로 기억된다.
박환기 전 거제시 부시장 · 미래도시전략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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